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용하게 된 첫 번째 ISP가 파워콤이었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지금껏 이용해 왔던(아직 인천 집에서는 사용중) 하나포스 이외의 업체를 생각했고, 바로 머릿속에 생각났던 곳이 파워콤이었다.

신청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어느 업체나 마찬가지지만). 전화 한 통화로 신청이 되었고, 주민번호 불러주고 자동이체할 내 통장 계좌번호 불러주고...

이제는 인천으로 내려간 룸메이트 고등학교 동창은 속도가 느리다고 가끔 투덜대고는 했지만, 워낙 그런거에 둔한 편이라 사용했다(관악구 원룸촌에는 그 유명한 광랜이 안들어 간다고 해서 ADSL lite급의 서비스를 받았다).

그러던 중 자취방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이사를 준비했고, 몇 날 며칠을 발품팔아 적당한 선의 방을 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계약을 한 집은 외부에서 선이 창문틀로 들어와야 하는 구조여서(그 흔한 창문틀에 선이 들어오는 구멍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파워콤을 해지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1년 약정으로 사용해 왔었는데 계약 일자가 약 보름정도 남아 사용을 하지 않아도 한 달치 요금을 다 함께 계산해서 해지를 신청하기 위해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LG 파워콤 입니다. 어쩌구 저쩌구...' '신규 가입은 1번, 어쩌구 저쩌구, 해지 신청은 4번을 눌러 주십시오.'
4번을 누르고 약 5분 이상을 기다렸지만 안 받았다.

'음... 바쁜가 보군.'
다시 걸었다. 역시 안받았다.
'해지 하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은가?' 싶어서 어차피 계약 기간이 남아 있기에 내일 걸자고 생각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전화를 다시 걸었다.
역시 안받았다.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고, 거의 30분에 한 번씩 전화를 했다. 역시 절!대!로! 안받더군.
퇴근 무렵에는 화가 나서 파워콤 홈페이지에
'해지하려고 하는데 전화를 절!대!로! 안받아서 해지를 못하고 있다. 해지 전화 받지 말라는 교육을 시키는거냐. 내 핸드폰 번호가 011-xxxx-xxxx이니까 내일 이 번호로 전화해라. 안그러면 본사로 직접 가겠다.'
라는 요지의 글을 남겼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서핑을 하려고 노트북 전원을 켜니 바로 답변 메일이 왔다.
'정말 미안하다. 통화량이 많아서 그런거다. 이해해 달라.
알려준 번호로 내일 반드시 전화 하겠다. 전화 받아서 상담원과 해지 절차에 대해 상담하라.'라는 내용의 답변 메일을 보고는 철!썩! 같이 믿고 잤다.

출근 후 업무가 바빠 점심을 먹고 3시가 넘어갈 때까지도 와야할 전화가 오지 않는걸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옆에 동료가 '파워콤 어떻게 됐어?'라는 물음에 문득 깨닫고 다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역.시.나... 안받았다.
내가 너무 속터져 하고 씩씩 거리니까 회사 동료들이 여기저기 서핑과 통화를 하면서 파워콤의 해지에 관해 알아봐 주더군.
얼마 있다가 전부 하는 얘기가
'준호씨. 잘못 걸렸어~ 본사 직접 가는 수밖에 없데. 네이버 지식인 검색해봐, 장난 아니야~' 정도의 내용이었다.

그래서 네이버 지식인에 '파워콤 해지'라고 검색하니까, 하!하!하!하!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
단순히 화가 난다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내가 아는 선을 넘어서는 욕을 신랄하게 적어 놓은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아, 정녕 이 방법 밖에 없구나.'
퇴근 후 모뎀과 어댑터를 가방옆에 고이 모셔두고 내일을 기약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강남 파워콤 본사로 갔다.
직원에게 부탁을 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람에게 해지관련 담당자가 누구냐고 물으니 '저 쪽으로 가세요'라고 쳐다도 안보고 얘기 하더군.
마치 늘상 있었던 일이라는 것처럼.

그 직원이 알려주는 곳에 가니 한창 무슨 회의를 하고 있는것 같았다.
이미 나는 흥분한 상태였고 눈 앞에 담당자라는 사람들이 보이니 더욱 울화가 치밀어 갖고간 모뎀과 어댑터를 책상위에 휙 던지면서 담당자를 찾았다.
일순간 회의는 중단이 되었고, 다들 책상에 조용히 앉더군. 그리고는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가장 막내, 짬이 안되는 사람을 누군가 불렀고, 그 사람이 나에게 왔다.

굉장히 상냥한 언행으로 얘기를 하길래, 나도 뭐 크게 소란피고 싶지 않아 '해지하고 싶어서 왔다.' 하고 조용히 일을 진행했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갔고, 계약 조건을 말하고 면허증을 복사해서 컴퓨터로 뭔가를 조회하더니 약간 당황한 모습으로 이런 얘기를 했다.
'고객님, 아직 해지 날짜가 남아서 위약금이 약 11만원이 나오게 됩니다. 해지 하시겠습니까?'
두둥!

이런 우라질 경우를 봤나.
그래서 그 때부터 퍼붓기 시작했다.
'내가 해지를 하기 위해 통화한 전화비용과 여기까지 찾아오게 될 때까지의 시간비용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은건 그럼 어떻게 보상할꺼냐. 내가 원래 사용을 안해도 이번달 요금까지 다 계산해서 해지하려고 했다. 오죽했으면 직장인이 일과시간에 여기까지 왔겠냐!!!!'
가뜩이나 조용했던 사무실이 더욱더 조용해졌다. 그 전까지는 그래도 그 쪽에 있던 사람들끼리 간간히 주고 받던 대화가 있었는데, 한 동안 침묵이 흐르더군.
(내가 담당자와 조용히 얘기하는 중간에도 '해지'라는 단어를 열 번도 넘게 들었다.)
나를 상대하던 담당자는 어쩔줄을 몰라 두리번(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것처럼 보였다) 거렸으나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더군.
솔직히 나보다 어려보이는 사람에게, 그것도 제일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윗사람의 아무런 도움없이 쩔쩔매는 사람에게 더이상 싫은 소리 하고 싶지가 않아서 그냥 2월 15일자로 해지해 달라고 했다(솔직히 그 사람 불쌍해 보였다).
그 사람이 해지 처리를 하는 동안 내가 앉아 있던 곳의 주변을 두리번 거리니 벽에는 대문짝만하게 뭔가가 붙여져 있더군.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이 써있었다.
"해.지.방.어.전.략.기.획"

뭐 어느 기업이나 약간의 이런 전략/기획이라는게 있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내 상황에 그걸 보니 웃음밖에 안나왔다.
일어나서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나왔다.
엘리베이터 타는 곳까지 따라 나왔던 그 담당자는 미안하다, 죄송하다를 연발했고, 그 말을 뒤로 하고 난 거기를 빠져 나왔다.
얼굴이 시뻘게져서리...

덧1) 어느 업체나 해지는 힘든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워콤은 매우 매우 매우 심했습니다.
     주번 사람들이 파워콤 가입하려 한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릴 생각입니다.

덧2) 메가패스는 새벽 3시에 장애 신고 전화해도 상담원이 받더군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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